햇밀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 제분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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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그레인 - 우기성 대표
사람에게 좋은 영양분이 모두 밀 껍질에 있는데 그걸 깎아서 사료로 다 줘버리고 남은 흰 가루만 먹는 게 아쉬웠어요.
밀의 비타민, 식이섬유 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제분 방식이 뭘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게 홀그레인 (통밀) 맷돌제분이었어요.
일반 제분은 고온에 갈리면서 단백질이 파괴되고 전분이 손상되거든요.
전분과 단백질 파괴가 없고 식이섬유 유가 많아 저희 제분소 밀은 갈색을 띠는 게 특징이죠.해외에서 맷돌 제분기를 사 오려고 했는데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제가 기계공학과 출신이라 직접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돌만 1년을 찾아다녔어요. 라돈 안 나오고, 돌이 갈려도 가급적 건강에 해가 없는 돌을 찾느라 오래 걸렸죠.
적당한 현무암 돌을 찾으니 이걸 가공해줄 사람이 한국에 두세 명 밖에 없는 거예요.
이분들이 또 큰 공업용 맷돌은 처음이셔서 제가 기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여러 번 부시고 다시 만들었지요.
만들었다가 기포가 발견되면 또다시 만들고 그랬죠.대형 제분소는 톤 단위로 제분을 하는데, 저는 하루에(8시간 기준) 250kg 정도를 제분할 수 있어요.
밀을 제분기에 넣으면 곱게 갈린 밀가루는 체에 빠지고 덜 갈린 밀가루는 다음 맷돌에서 다시 갈려요.
이렇게 다섯 단계를 거칩니다. 마지막에 체를 쳐서 밀기울과 밀을 분리하지요.
최근에 지름 120cm 큰 맷돌을 제작해서 앞으로는 생산량도 더 늘 겁니다.수입한 밀은 처음에는 질이 좋아도 멀리서 오느라 오랜 시간 유통과정을 거치면 벌레도 생기고 약도 쳐서 질이 떨어져요.
그래서 우리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우리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빵집에서 이 밀가루를 쓸 수 있겠나 고민이 되죠.원가를 낮추기 위해서 6천 평 정도 밀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올가을엔 3만 평 정도로 늘릴 생각입니다.예전에 수입 유기농 밀을 취급해서 제가 짓는 밀 농사도 차근차근 유기전환하면서 유기농 밀을 생산하려고 해요.
유기농이지만 가능하다면 원가를 기존 밀가루와 맞추고 싶어요.
현재 규모는 작지만, 나중에 규모가 조금 더 커지면 전반적인 밀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강화 벨팡]
매일 새벽 서너 시부 터 저녁까지 빵 만들기에 전념하는 주자경 베이커에게 고민은 밀가루다. 호밀과 통밀빵에 사용하는 밀은 농가에서 통곡을 받아 소형제분기로 직접 제분한다. 국내 농가들의 좋은 밀을 제대로 써 보고 싶지만 비싸게 구입한 농가밀의 품질은 늘 제각각이었다. 제분 상태도 안정적이지 않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없었다.
늘 밀가루 때문에 고민하는 그는 오가그레인이 강화에 생긴 것이 무척 반갑다. 오가그레인의 갓 제분 한 밀로는 바로 빵을 만들어도 별문제가 없다. 천천히 갈아낸 밀이라 단백질과 전분의 변화가 적기 때문이다. 오가그레인 덕분에 지역의 농가밀로 빵을 만들고 싶던 벨팡의 꿈도 한 발짝 발을 내디딘다. -
금곡정미소 - 백관실 대표
농사짓기 수월한 게 앉은뱅이밀이더라고. 그래서 그 옛날 90년대에 우리밀 살리자면서 보급종 밀이 나와도 내는 이거를 계속 고집했어예.
다른 거 해다 먹어도 이 맛이 나는 밀가루가 없더라고.
앉은뱅이밀 한테 이길 밀이 없다고 하면서 이 밀이 좋으니까 내는 계속 가만(앉은뱅이밀만) 농사를 짓고 제분을 핸거지.
그러다 다른 사람들 다 없어지뿌고 대한민국에 내 혼자만 가지고 있었던기라.
그래서 이 밀을 세상에 퍼뜨리고 매스컴도 많이 타게 됐고, 이 밀 덕분에 내가 묵고 살기가 편안하게 됐지예.6~70년대에는 이 종자가 시골마다 거의 다 있었어예.
정부에서 밀 수배를 안 하는 바람에 나머지 농가들은 전부 다 이 종자를 버렸지예.
우리야 백 년째 할아버지 때부터 방앗 간을 하니까 이 종자를 안 놓고 계속 농사짓고 제분해서 국수 뽑고 밀가루 뽑고 지금 이 명맥을 유지해 왔거든예.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기계를 사용할 줄 알았어예. 기계 집안이라.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도 밀을 갖다가 기계에다 갈았어.
발동기를 돌려서 밀을 갈아서 밀가루를 냈어. 이게 목탕기라 목탕기. 나무를 떼서 기계를 돌린기라.
이게 100년 넘었어예. 좀 앞섰지. 이런 기계화된 정미소가 옛날에는 동네마다 있었지.
많이 있었는데 고마 한 90년대에 다 없어짓어. 싹 없어짓어.앉은뱅이밀은 큰 제분 공장이 못해. 제분 공장 기계가 망가져버려예. 고장 나버린다고.
체에 치면 밀가루가 나가야 하는데 엉겨 붙어버리는 거야. 안에 떡이 돼버려예.
그러믄 고마 안에 기계가 고장이 나뿌는기라. 그래서 이 밀을 못갈아예.
우리는 옛날 방식이거든. 일제 강점기 시대 때부터 (금속) 맷돌식으로 갈은기라.
이 밀은 (금속)맷돌을 가지고 돌리면 누룩도 할 수 있고 갈면은 체에 치가지고 전도 꾸워 먹고 수제비도 다 했지요.[하동 토지농원]
금곡정미소의 종자밀을 생산하는 강영수 농부님. 어린 시절 마을의 밀맛을 기억하는 농부님은 앉은뱅이밀 맛이 그 맛이라고 자랑하신다. 농부님이 밀 농사를 짓는 악양벌은 땅힘이 좋아 대대로 이모작 밀 농사를 지었었다. 한때는 대기업의 밀 계약재배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돈 안 되는 밀농사 를 다 접어버리고 일부 농가가 보리나 맥주보리를 키우고 있다.
하동에서도 농사 귀신으로 소문난 솜씨 좋은 강영수 농부에게 악양의 논은 다른 밀과의 교잡 걱정 없이 순도 높은 앉은뱅이밀을 키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앉은뱅이밀에 대한 집념이 있는 금곡정미소가 있어 이어갈 수 있는 일이다. -
지리산 우리밀 - 김경태 사장
아버지께서는 1995년쯤에 처음 제분소 시작하셨습니다. OEM 계약으로 농협 일만 하고, 농가밀을 제분하지는 않으셨어요.
부모님 연세도 있고 몸도 안 좋으시고 해서 제가 2009년 함양으로 와서 제분소를 물려받았습니다. 뭐 그때도 농협 일을 계속했었습니다.농가밀은 사천 성한농산 밀 빼고는 제분을 안 했죠. 일하면서 점점 농가와 농부님들을 알게 돼서 차츰차츰 농가밀을 제분하고 있어요.
솔직히 농가밀 제분 귀찮고 힘들어요. 성한농산처럼 대량으로 몇 톤씩 한꺼번에 하면 그나마 좋겠지만 백 킬로, 이백 킬로, 삼백 킬로 소량은 정말 힘들어요.
1톤 정도 되어야지 제분 기계에서 원활하게 밀가루가 생산되는데 1톤이 안되다 보니까 기계가 제구실을 못 하죠.
1톤 제분하는 시간이나 1~2백 킬로 제분하는 시간은 비슷하니까 저에게는 많이 손해죠.
제분할 곳이 없다고 사정사정하시니까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농가밀 제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그때는 동네마다 방앗간, 정미소가 있어서 소량 제분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아시다시피 동네 방앗간도 없고 그러다 보니 햇밀 나올 시기에는 전국에서 많이 전화가 와요.
얼마 전에도 파주에서 연락 왔는데 이분은 진짜 소량이에요 60킬로 정도. 아무리 찾아봐도 제분할 곳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3년째 그분 밀을 제분하고 있어요. 내년에도 밀을 심는다고 하시니 어쩌겠습니까, 내년도 해드려야죠.
이런 분들을 어떻게 모른체 할 수가 있겠어요. 계속 해드려야죠. 제가 할 일인데.
앞으로도 농가밀을 제분할 생각입니다.[괴산 농사짓는목수]
밀농사를 지으면 매년 반복되는 일이 비와의 씨름이다.작년은 지속적인 비로, 올해는 갑작스런 폭우로 햇볕과 하우스를 이용해 앉은뱅이밀,금강,백강,호밀,레드파이프를 말려 비가 오지 않는 날을 골라 함양 '지리산우리밀'로 내려보냈다. 사실 이 계획도 수차례 연기되었었다.
적은 양이고 그나마 품종도 제각각이라 하나씩 제분하려면 큰 품이 드는데, 이 정신없는 때에 번거로운 일을 마다치 않고 맡아주는 제분소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월인 선생님께 빵을 배우던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경태 사장의 함양제분소니까 가능한 일 아닐까? 밀농사를 짓는 소규모 농가 들의 밀 제분을 기꺼이 맡아온 지리산 우리밀 제분소의 힘은 사람에게서 온다. -
대성팜 - 신도현 대표
5, 6년 전만 해도 품종 개념이 없었어요. 잡동사니로 막 제분했죠. 6~70년대에는 동네에 조그마한 방앗간이 많았죠.
그때는 냇가에서 밀을 씻어 말리면 좋은 것은 요리 해먹 고 아주 안 좋은 것은 따로 모았다가 떡 할 때 시루편으로 김이 빠지지 않게 막는 용도로 썼어요. 안 버리고 지혜롭게 다 썼던 거죠.93년도쯤 우리밀 운동이 시작됐을 거예요.
경남 고성 배둔면에 처음으로 밀을 심었죠. 많이 심어놨는데 밀을 갈 데가 없잖아요. 제분소들은 다 없어졌고.
그래서 밀 공장을 짓 자고 한 거죠.
우리밀 운동본부 공장이 5개 있었고 각 공장 주인은 다 달랐어요. 하나의 연합체 같은 거였어요. 구례가 1공장, 무안이 2공장…
IMF 때 구례 공장만 빼고 망했어요. 이 기계가 무안공장에서 온 기계에요. 나머지들은 다 떼다가 고철로 넘겼지 뭐.
거기서 제가 손을 다쳐서 공장장에게 기술 인수인계를 하고 나왔는데 지금도 친하게 지내요. 덕분에 나도 공장 지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안 쓰는 기계도 나한테 주고.밀 품종별로 제분하는 게 참 어려워요. 용도가 나뉘어 있다고 해서 시장에 똑같이 나가지 않거든요. 다 팔려야 되는데 재고로 남는 거예요.
또 기계는 밀 종류가 바뀌면 청소를 해야 해요. 적어도 며칠은 돌아가야 하는데 기계 한두 시간 돌려놓고 이틀을 청소한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범용으로 가는 거죠.제분 공장도 가동을 멈추면 안 돼요. 라인을 오래 멈춰놓으면 벌레가 생겨요. 계속 돌아야 벌레가 안 생기죠.
15일, 한 달 쉬면 공장을 뒤집듯 청소해야 해요.
우리는 연간 800톤 정도 생산합니다. 농협 OEM이 많아요. 우리 밀 농협이 수매한 밀을 가공해주죠.밀 농가를 살리려면 생산이력제가 필요해요.
이 밀은 아무개 농부가 몇월 며칠 파종하고 언제 수확했다 이렇게.
생산이력제가 잘 되면 소비자가 어디에서 심고 도정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잖아요.
나에게 오는데 얼마나 에너지가 들었는지 그런 개념을 소비자도 알아야, 작은 빵집도 살 수 있죠.내가 이 나이에 재벌 될 것도 아니고, 그냥 집사람이랑 저녁에 생맥주 한잔하거나 국밥에 소주 한잔하면서 제 일에 행복감을 느끼면 되는 거죠.
제분일하면서 후회는 없어요.[논산 더불어농장과 평창 브레드메밀]
더불어농장의 앉은뱅이밀은 대성팜에서 밀가루가 된다. 4년 전 첫 밀농사를 지은 권태옥, 신두철 농 부는 완주에 제분소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대성팜을 못 만났다면 애써 농사지은 밀을 싣고 몇 시간 거리의 제분소를 찾아가야 할 판이었으니까. 올해도 대성팜에서 2.8 톤의 앉은뱅이밀을 제분했다. 지난해 농부는 마르쉐 햇밀장에서 평창의 베이커 브레드메밀과 만났다. 밀가루가 이어준 인연이다. 브레드메밀은 지난 1년여간 대성팜이 빻아준 더불어농장의 앉은뱅이밀로 빵과 과자를 만들었다. 특히 앉은뱅이밀로 만든 과자는 묵직한 풍미를 지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는 친구들과 농장 일손을 돕기도 했다. 밀은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좋은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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